투. 페리님
그 날은 아침부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막시민은 잠에서 깨어나는 게 불쾌한지 자신의 촉이 불쾌한지 영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 한 것은, 조군 이 녀석이 지금껏 늘어져 자고 있는 자신을 괴롭힌다거나-정작 본인은 아니라고 잡아떼지만- 최소한 깨우러 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코빼기조차 비치질 않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귀찮은 녀석이 귀찮은 짓을 하지 않으니 편해야 정상이지만... 자신이 애초에 이 녀석을 다시 만난 다음부터 정상인지도 잘 모르겠고... 까지 생각을 한 막시민은 머리를 휘저었다. 조슈아가 한 번 생각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자신도 데모닉에 전염이 되었는지 생각의 흐름이 멈추질 않는 것이다. 그것도 쓸데없는 쪽으로.
어쨌든 조군을 만나면 한 대 쥐어박을 심산으로 낡아빠진 코트를 걸쳤다. 조슈아가 전에 몇 번이나 새 코트를 사준다고 아우성이었지만 빳빳한 새 깃이 달린 코트는 막시민에게 너무나도 큰 불편을 안겨주었으므로 단번에 거절했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조슈아는 끈덕지게 권유했지만 막시민은 귓등으로도 듣지를 않았다. 제 놈이 아무리 고집이 세 봤자 자신의 귀찮음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차라리 그 돈으로 맥주를 사라고 할 필요도 없다. 그 녀석은 둘다 사온다 해도 몇백 몇천 개를 사올 수 있는 녀석이었다.
도토리 빌라 거실에도 아무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다. 지금은 한창 오전시간일 테고 다 수업에 들어가서 나름의 방식으로 졸고 있을 테지, 그 파란머리 놈만 빼고.
파란머리 놈은 분명 조용하고 실속있는 놈이었다. 하지만 그냥 마음에 안 들었다. 곱상한 얼굴을 해서는 하는 말의 반쯤은 거짓이라는 것 쯤 막시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숯가마랑 전에 알던 사이인 듯 했으나 그렇게 믿을 만한 놈은 못 된다 라는 게 막시민의 최종 판단이었다.
지금껏 조슈아가 자신을 깨우지 않은 일로 봐서는 확률적으로 조슈아가 학교에 안 갔다는 쪽이 높았다. 그 중에서도 막시민은 제일 확실할 것 같은 조슈아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오랜 친구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꼭 이런 식이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게 정말 딱 질색인 막시민이 일생동안 제일 많은 걱정을 하게 한 장본인이 바로 조슈아였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선 순간이었다, 막시민의 눈앞에 전의 파란 머리가 마주 섰다. 이놈같은 공부벌레가 한창 수업중일 시간에 자기 빌라가 위치한 2층도 아닌 3층에는 왜? 까지 생각한 막시민은 괜시리 불쾌해져 인상을 구겼다. 조슈아의 방에서 나오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 막시민을 바라본 란지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까딱하고 그를 스쳐 내려갔다. 정말이지 정이 갈래야 갈 수가 없는 놈이었다. 하지만 저런 놈도 겉모습은 멀쩡하니 분명 조슈아처럼 뒤따라오며 얼굴을 붉히는 여학생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조슈아의 방문은 언제나처럼 잠겨져 있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 또 한번의 문을 열고 조슈아의 방으로 들어가기까지도 정말 인기척 하나 없는 듯 했다. 조슈아는 그렇게 잠자는 인형처럼 침대에 돌아 누워 있었다. 숨조차 쉬질 않는 듯 너무나도 고요히 이불 속에 파뭍혀 있었다. 정확히 일년 전쯤에도 그는 인형처럼 까딱않고 하루종일 비취반지 성에 누워 있었더랬지. 괜시리 그때 생각에 맘이 저려와 오히려 큰 소리로 조슈아를 불렀다.
"누가보면 죽은 줄 알겠네. 왜 다 죽어가는 나무늘보마냥 침대에서 떨어지질 않는 거냐? 지금이 대체 몇 신데."
"나 방금 고백받았어."
막시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설마. 아니 말도 안 되는 전제다.
"네 녀석이 고백을 한두번 받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새삼스럽게 구냐."
"그냥 단칼에 거절할 수 없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막시민은 점점 목이 타 마른 침을 삼켰다.
"누군데, 네가 거절 못 할 위인이 이 세상에 있기나 했냐?"
"있더라고. 막군... 어떻게 하면 좋지?"
"네 녀석의 잘난 머릿 속에 거절을 위한 답안이 수천 수만가지는 있을 텐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왜냐면, 나도 내가 어떤 생각인지 모르겠으니까."
"데모닉 주제에 자기 생각도 정리가 안 되냐? 이 먹다버린 과일껍질 같은 녀석아? 그런 애매모호한 말로 나한테 대체 뭘 바라는거야? 내가 무슨 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독심술가도 아니고 어쩌라는 거야?"
조슈아는 갑작스러운 막시민의 욕지거리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말을 했다고 저렇게 화를 내는 건지 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막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네가 그렇게 화를 낼 정도의 무슨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조슈아가 눈을 굴리며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수업을 나 때문에 못갔다고 화내는 것도 아닐 테고...
"그까짓 수업 때문이겠냐!"
"그것 봐."
"내 말은...!"
조슈아가 막시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가는 장인이 흰 점토로 곱게 빚어놓은 인형마냥 빼어난 얼굴은 도대체 몇 년이 지나도 질리지를 않았다. 인형의 눈동자에는 분명 대륙에서 제일로 빼어난 흑요석을 박았을 것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새카만 두 눈동자에 막시민은 제 맘 속 말들까지 들켜버릴까 무서워졌다. 조슈아는 평소 자신의 궤변을 말이 안 된다며 좋아하지만, 그 속에는 사실 조슈아의 얼굴을 바라보는 채로 진실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것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네까짓 멍청한 데모닉 따위가 뭘 알겠냐. 됐다."
"막군이야말로 애초에 내 진짜 고민이 뭔지 알기나 하겠어."
"그렇게 부채로 입 가린 부인마냥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건 딱 질색이라. 나간다."
고개를 싹 돌려버리고 몸을 틀어 한발씩 걸어 나간다. 그게 막시민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더 이상 저 고운 얼굴이 하는 고백 어쩌고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하나 더 변명하자면, 가끔 저 녀석이 하는 낭설에 휘말릴 위험에 처했을 때는 역시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말려들어 솔직해지는 것은, 그것은 막시민에게 있어 최악이었다. 그는 조슈아가 언제나 편하게 도망쳐 올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했으므로, 애써 그 곳을 제 손으로 망가뜨리는 멍청한 짓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설령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해도, 조슈아가 자신에게서 도망쳐 버리는 것보다는 그 쪽이 훨씬 나았다. 조슈아를 다시 한 번 잃어버리는 것은 끔찍했다.
방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조슈아는 그가 닫고 간 문을 난감하게 바라보았다.
"막군, 질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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